
attJun
13시간 전
#실리콘밸리연대기 - Jun Ventures #10
GP는 투자한 회사의 이사가 되기로 했고, 변호사는 그날부터 GP가 자기 펀드 편을 들면 안 되는 순간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텀시트가 합의되고 계약서를 쓰는 사이, 회사 쪽 변호사가 빈칸 하나를 채워 달라고 했습니다. 이사회는 창업자 둘, 펀드 하나, 나중에 뽑을 독립이사 하나. 그중 "펀드 하나"에 누구 이름을 넣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사회(Board)는 회사의 큰 결정을 하는 자리입니다. 대표를 뽑고 자르는 것, 큰돈을 쓰는 것, 회사를 파는 것이 여기서 정해집니다. 투자자가 이 자리를 받을지는 라운드마다 협상으로 정해지는데, 이번에는 리드 투자자가 한 자리를 요청했고 창업자들이 받아들였습니다.
펀드 변호사는 사람을 고르기 전에 그 자리가 무엇인지부터 설명했습니다. 이사가 되면 회사와 주주 전체를 위해 판단해야 합니다. 펀드를 위해서가 아니라. 평소에는 회사가 잘되는 것이 펀드에도 좋으니 문제가 없지만, 두 이익이 갈라지는 순간이 옵니다. 회사를 팔자는 제안이 왔을 때 회사엔 기다리는 게 좋고 펀드엔 지금 파는 게 좋을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이사 자리에 앉은 사람은 회사 편에 서야 하고, 펀드 편을 들고 싶으면 그 안건에서 빠져야 합니다. 그러면 펀드는 그 자리에서 무엇을 얻느냐는 질문에, 변호사는 정보와 영향력이지 통제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펀드가 꼭 지켜야 하는 동의권은 이사 자리가 아니라 투자 계약서의 별도 조항으로 받아 둡니다.
둘째, 미국 회사의 이사는 자기 대신 다른 사람을 보내 표를 던지게 할 수 없습니다. GP가 못 가는 날 벤처 파트너가 가면 손님으로 듣고 말할 수는 있어도 표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사 자리와 별개로 참관인(Observer) 자리를 협상해 두는 투자자도 있습니다. 표가 없으니 이사의 의무도 지지 않습니다. 셋째, 이사는 회사가 잘못되면 소송의 상대가 될 수 있어서, 회사가 비용을 대신 물어 주는 면책 계약과 D&O 보험을 투자 전에 갖추자고 요청했고 회사도 받아들였습니다.
GP는 자기가 앉기로 했습니다. 딜을 찾아온 벤처 파트너는 서울에 있어 회의가 늘 새벽이거나 밤이고, 이 딜에서만 수익을 받는 사람이 회사 전체를 위해 판단하는 자리에 앉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다는 것이 변호사의 의견이었습니다. 대신 그는 참관인으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서운해하는 그에게 GP가 한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이사 자리는 상이 아니라 의무이고, 그 의무는 펀드가 아니라 회사를 향한다.
GP는 한국에서 심사역일 때 이사회 자리를 받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가 있던 회사는 계약서의 사전 동의 조항으로 회사를 지키고 이사회에는 참관인으로 들어가는 쪽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달랐던 것은 자리를 받느냐가 아니라 앉은 다음이었습니다. 앉는 순간 자기 펀드가 아니라 회사를 위해 판단하겠다고 약속하는 셈이었습니다. 투자 계약서에 서명하는 날 GP는 서류 하나에 더 서명했습니다. 회사가 GP를 보호하겠다는 면책 계약이었고, 그 서류의 당사자는 펀드가 아니라 GP 개인이었습니다.
용어
- 이사의 의무(Fiduciary Duty): 이사가 자기를 보낸 쪽이 아니라 회사와 주주 전체를 위해 판단해야 한다는 법적 의무
- 참관인(Observer): 이사회에 들어가 듣고 말하지만 표가 없는 사람
- D&O 보험: 이사·임원이 업무로 배상 책임을 질 때 보험사가 대신 물어 주는 보험
https://www.attorneyjun.com/jun-10-board-seat-fiduciary-duty-obse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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