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온화
2026.06.15.
꽃을 꺾지 않는 사람의 시간표
세상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문법은 단순하다.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일단 가져야 한다는 것. 꽃이든, 직함이든, 사람이든. 손에 쥐고 "이건 내 거야"라고 말할 수 있어야 비로소 안심이 되는 구조다. 결혼도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다. 좋은 사람을 발견하면, 그 관계를 제도라는 화병에 꽂아서 고정시키는 일. 꺾인 꽃은 예쁘긴 한데, 사실 그 순간부터 시들기 시작한다.
20대 후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슬픔과는 별개로, 그때부터 묘하게 사회의 눈치를 덜 보게 됐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라는 존재가 나에게는 일종의 사회였던 것 같다. 그 사회가 사라지자, 처음으로 '내가 정말 뭘 하고 싶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질문에 답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내가 하고 싶은 건지, 그걸 하면 남들이 멋지다고 봐줄 것 같아서 하고 싶어진 건지, 그 둘이 잘 구분이 안 됐다. 어쨌든 그때부터 이것저것 도전했다. 여러 직업을 거쳤다.
해보고 나서야 알게 된 게 있다. 관심 있는 일이라도, 그게 돈을 버는 일이 되는 순간 괴로워질 수 있다는 것.
취미로 좋아하는 정도로는 부족했다. 그 이상으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의 분야여야 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취미 정도로 좋아하는 걸 일로 만들려고 했고, 그게 그렇게 괴로운 일인지 미리 알 도리가 없었다.
돌고 돌아 지금의 일을 3년 정도 하고 있다. 좋아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다. 다만 의미는 있다고 생각해서 계속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걸 새로 도전할 에너지도 예전만큼은 아니다. 그리고 안정감이라는 게, 젊을 때는 시시하게 보였는데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온다.
그래서 결국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보면, 사실 그렇게 거대한 게 아닌 것 같다. 마음이 편한 곳에서, 자연도 도시도 아닌 그 어딘가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것. 그리고 가끔 이렇게 글을 쓰는 것. 이게 전부라면 좀 허무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막상 이 정도를 갖춘 삶도 흔치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꽃을 꺾어서 화병에 꽂는 삶을 한참 시도해봤다. 몇 번은 성공했고, 대부분은 실패했고, 성공한 것조차 결국 시들었다. 그러고 나서야 알게 된 건, 애초에 화병이 그렇게 필요한 게 아니었다는 거다. 길가에 핀 꽃을 보고 "예쁘다"하고 지나가는 것, 그 정도로도 충분한 날이 잦아졌다.
성취를 우습게 보려는 건 아니다. 다만 이제는 그게 내 삶의 중심일 필요는 없다는 걸 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의미를 붙여서 계속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내 나름의 균형점이다. 완벽한 답은 아니지만, 지금의 나한테는 이게 맞는 답인 것 같다.
화병이 줄어들면 관리도 줄어든다. 그 자리에서 그저 쉴 공간이 생긴다.
27
18
공유하기
모든 댓글

최지아
2026.06.15.
글 읽고 공감이 되서 어떤 일 하시는 분인지 페이지에 가봤어요. 아이들과 함께 사신다는게 어떤 직업인지 궁금합니다.
1
답글달기
답글 숨기기

강온화
2026.06.15.
보육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1

최지아
2026.06.15.
정말 대단한 분이시네요. 고귀한 직업이세요. 존경합니다. ^^
1

강온화
2026.06.15.
피해주지 않고 자기 삶을 책임지고 있다면 각자의 직업이 고귀한 것 같습니다. 쑥쓰럽네요. 감사합니다.
좋아요

엄소진
2026.06.15.
보육원이라니 너무 훌륭하세요. 글도 잘쓰시구요. 저도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합니다. 서로 응원해요. 반갑네요. ^^
1
답글달기
답글 숨기기

강온화
2026.06.15.
아이들을 학습으로 가르치는 일은 또 다른 엄청난 영역인 것 같습니다. 응원합니다.
좋아요

산책하는 하마
2026.06.1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1
답글달기
답글 숨기기

강온화
2026.06.15.
시간 내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아요

싸이코사운드
2026.06.15.
인생이, 생각이 담긴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좀 더 돌아보겠습니다
1
답글달기
답글 숨기기

강온화
2026.06.15.
저도 이코 와서 많이 돌아봅니다. 같이 돌아봅시다(?)
1

부동산마이크로데이터
2026.06.15.
일종의 깨달음이군요. 단단해 보이십니다
1
답글달기
답글 숨기기

강온화
2026.06.15.
혼란스럽지만 부족하게 여겨지는 자신이라도 받아들이고, 정줄을 붙잡아 가는 게 어른의 삶인 것 같네요. 멀쩡한 어른 되기 참 어렵네요. 정줄 놓으면 혼란스러우니 그냥 어른되기도 어렵고.
1

청담동김여사
2026.06.15.
참 귀한 일 하십니다. 축복합니다.
2
답글달기
답글 숨기기

강온화
2026.06.15.
감사합니다. 저도 김여사님의 앞날을 축복하겠습니다 🙂
1

드보라
2026.06.15.
아름다운 분입니다. 아이들을 잘 길러주세요. 선생님의 인생도 멋있고 빛나길 기도하겠습니다.
1
답글달기
답글 숨기기

강온화
2026.06.17.
아름답다는 표현이 넓은 의미라면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아요

노혜리
2026.06.15.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건강하세요. ^^
좋아요
답글달기

소녀시대
2026.06.15.
그냥 글 잘쓰는 분인줄로만 알았어요. 정말 귀한 일 하시네요. 존경합니다.
좋아요
답글달기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하세요.